새누리당은 정경유책의 대표적인 집단으로 이 나라의 경제를 골병 들게 한 집단이다?


정경유착은 소위 말하는 관치경제의 부작용이다. 과거 개발정권이 관치경제를 추구했던 것은 맞다. 국민소득 80불에 미국의 불하물품을 빼돌려 이권을 챙기는 게 국내자본의 전부였던 시절이니 어쩔 수가 없다. 




정부가 주도해서 차관을 빌려오고 그것으로 기업을 지원해서 경제개발을 일구는 과정에서 피치 못해 발생된 문제이다.


즉 관치경제는 정경유착이라는 부작용을 낳았지만, 한강의 기적을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은 어떤가? 벤처 사기꾼들과 유착을 했다. 외국자본들과 유착을 했다. 그래서 사기꾼들 주머니를 불리고 한국기업을 외국자본의 사냥감으로 전락을 시켰다.  노무현 정권은 독식을 하겠다고 설쳤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과 2010년 두 차례 세계적 경제위를 맞았으나, 우리는 어느 나라보다도 빨리 위기를 헤처 나갔으며, 국내총생산, GDP는 위기 이전인 2008년보다 11%이상 상승해,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을 크게 앞질렀다. 과연 누가 경제를 골병들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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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영호남 지역감정을 왜 부추겼나?


81년도와 85년도에 있었던 총선에서 민정당은 호남의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다. 다시 말하면 그 당시까지만 해도 영호남 지역감정이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았었다. 아래는 81년도와 85년도 총선에서의 정당별 득표현황이다.





※ 민정당(민주정의당) :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세력이 중심이 되어 구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을 규제한 가운데 1981년 1월 15일 창당, 1981년 3월 전두환이 제 12대 대통령에 취임하고, 곧이어 제 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제 5공화국의 집권여당이 됨. 1985년 제 12대 국회의원선거에서도 신민당 돌풍에도 불구하고 과반수 의석을 확보



정치적인 입장에서 영호남의 구도가 생긴 것은 김영삼, 김대중의 단일화 실패에 기인하는 일이다. 그 때부터 선거 때 영호남의 투표성향이 완전리 달라졌다. 그 해 통일민주당을 장악한 김영삼은 대통령 선거 출마를 발표하고 나서자 당내 경선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여있던 김대중은 10월 18일 통일민주당을 탈당하여, 평화민주당을 창당한다.



김대중과 대선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김영삼은 제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2위로 28%의 득표율을 얻어 민주정의당의 노태우에게 패배하였다. 1987년 당시 노태우, 김영삼 대선 후보는 각각 광주 유세에 나섰다가 성난 시민들이 던지는 돌과 화염병에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김대중은 지속적으로 지역감정을 자극하며 영호남의 정치적 대립구도를 만들었다. 덕분에 깃발만 꼽으면 덩선이 되는 철밥통이 만들어 졌다. 그것을 새누리당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다. 물론 김영삼이나 김종필도 그 지역구도에 편승했다. 그러나 원죄는 김대중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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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독재의 그늘아래서 치부를하여 부를 축적한자들이 새누리당에 있다?

박정희 집권 시의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80불이었다. 당시 태국은 160불이었다. 말 그대로 거지나라렸다. 지금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22,000불 수준에 올라 있다. 사실 그게 박정희의 경제개발 덕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만일 새누리당에 박정희 독재 하에 치부를 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모두 모여있다면, 새누리당의 당원은 5천만명 쯤 돼야함. 대한민국 국민 중, 박정희 시대에 부를 축적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새누리당은 5.16 광주폭동을 도발시켜서 무고한 시민을 죽인자들의 본거지이자 근간이다?

80년 5월 16일 전국의 학생운동 조직은 그간의 시위를 멈추고 일단 관망의 자세에서 정국을 지켜볼 것을 결의하였다. 그로 인해 시위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유독 전남지역에서만 대규모의 민주화 성회를 계획했다.


그 결정은 당시 전남지역의 용공세력의 사령부였던 녹두서점과 현대문화연구소의 역할에 의해서였다. 광주에 군병력이 투입된 것은 그 때문이다.. 5월 18일 게엄령이 선포되자 전남대 앞에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경상도 정권이 전라도의 씨를 말리려 한다”는 선동을 좌파학생운동권이 광주에 퍼뜨리면서 5.18의 비극은 시작이 되었다.



물론 전두환 정권이 잘 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5.18을 도발시킨 것이 과연 전두환 정권일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간다. 역사는 흔히 대립되는 한 쪽을 미화시키고 다른 한 쪽을 매장시키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올바른 역사관이 아니다. 5.18의 책임을 따진다면 전두환 정권보다는 광주의 시위를 주도했던 좌파들의 잘못이 더 크다.


물론 선동에 넘어가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광주시민들에게는 조의를 표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철밥통을 공고히 하고 노벨상에 대통령까지 해 먹은 김대중을 보면 좀 착찹하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역사상 5.18 비극의 가장 큰 수혜자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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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에는 친일파 후손이 많다?


해방 이후 남한에서는 친일매국세력을 척결하기 위한 반민특위 활동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반민특위는 실패를 하였다. 왜냐하면 미군정과 한민당(한국민주당)의 방해공작 때문이었다. 


한민당은 송진우, 김성수, 장덕수, 조병옥, 윤보선 등 우익인사들 뿐 아니라, 일제시대 친일매판지주 세력들도 함께 대거 참여한 정당이다.



그 한민당은 1945년 9월 16일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도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기여했지만, 이듬해 초 이승만에 반발해 남한의 야당의 계보를 만든다. 이승만에 반발 했던 이유는 정부수립을 위한 초대 조각 인선에서 친일파의 세력이 많이 포함된 한민당을 소외시켰기 때문이다. 



지금 민통당은 그 한민당의 직계 후손이다. 도대체 누가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말인가? 그런 민주통합당을 지지하는 자들이 새누리당을 친일후손으로 이루어진 정당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요즘 TV를 보면 이게 일본방송인지 한국방송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오락프로그램의 대부분이 일본방송을 그대로 카피한 것이 많다. 극단적으로 보면 이미 한국은 일본의 문화식민지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이런 상황이 언제부터 벌어졌는가? 김대중 정권 때부터다. 친일파 후손다운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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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환 장관 프로필 


성명 : 서승환 (徐昇煥) SUH Seoung Hwan

현직 : 국토교통부 장관

전직 :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부총장

생년월일 : 1956년 06월 28일

출생지 : 서울


서승환 장관 학력

서울고졸

1979년 연세대 경제학과졸

1981년 연세대 대학원졸

1985년 경제학박사(미국 프린스턴대)


서승환 장관 경력사항

1987~2013년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KBS 경제전망대 앵커, 통계청 전문직공무원, 핀란드 헬싱키 경제학스쿨 교환교수

2001년 한국응용경제학회 감사, 한국응용경제학회 회장

2003년 북한경제전문가100인포럼 회원(현)

2004년 (사)옳은생각 이사장

2005∼2006년 한국응용경제학회 회장

2006∼2008년 연세대 기획실장

2008년 연세대 송도국제화복합단지건설추진단장 겸 건설기획본부장

2009∼2010년 한국지역학회 회장

2010년 연세대 국제캠퍼스 총괄본부장

2010년 국가미래연구원 국토ㆍ부동산ㆍ해운ㆍ교통분야 발기인

2012년 연세대 국제캠퍼스 부총장

2013년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인수위원

2013년 국토해양부 장관(현)


서승환 장관 상훈

한국경제학회 청람상(1993), 근정포장(2004), 제20회 시장경제대상 대상(2009)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의 부친은 故 서종철 전 국방부 장관으로 박 전 대통령 시절 육군참모총장과 국방장관을 지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육사 한 기수 선배였다. 


도시경제학 전문가인 서승환 장관 내정자는 연세대 경제연구소장, 한국지역학회 회장, 한국응용경제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국토해양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 건설교통부 부동산시장 조기경보시스템 EWS 

지표 점검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정부의 개입을 줄여 시장 효율성을 높이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어 장기화된 주택 시장 침체 속에서 거래 활성화 등 산적한 현안들을 해결해나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사진)은 파산 위기에 몰린 서울 용산역세권개발사업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세종시와 10개 혁신도시는 빠른 시일 내에 자족 기능을 갖출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임 일성으로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습니다.

"우선 부동산 시장을 조속히 정상화시켜야 합니다. 주택경기의 장기간 침체가 실물경제의 위축은 물론, 국민의 삶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합니다." 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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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길재 통일부 장관 프로필 



현직 : 통일부 장관

전직 : 북한대학원대학교 산학협력단 단장

생년월일 : 1959년 01월 15일


류길재 장관 학력

1984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졸

1987년 고려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졸

1995년 정치외교학박사(고려대)


류길재 장관 경력사항

1987∼1996년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원

1996∼1998년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전임강사)

1997년 세계지역연구협의회 섭외이사

1998년 세계지역연구협의회 출판이사

1998∼2005년 북한대학원대 조교수ㆍ부교수

2001년 민주평통 상임위원

2001년 한국정치학회 섭외이사

2002년 국제지역학회 이사

2002년 한국학술진행재단 남북학술협력위원

2004년 북한연구학회 총무이사

2004년 한국국제정치학회 북한ㆍ통일분과위원장

2005~2013년 북한대학원대 교수

2005년 북한대학원대 교학처장

2007년 북한대학원대 산학협력단장

2007년 경찰청 보안자문위원

2008년 대통령실 외교안보자문위원

2009년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2010년 국가미래연구원 외교안보분야 발기인

2013년 북한연구학회 회장

2013년 통일부 장관(현)


류길재 장관 저서

'북한의 변화예측과 조기통일의 문제점(共)'(1998, 소화) '김일성· 김정일 문헌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共)'(2003, 한울)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최근 북한의 제3차 핵실험 이후에도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설득해야 하며 제재를 하더라도 북한과의 대화와 교류 협력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고 주장해온 인물이다.현재  대다수 좌파 언론들은 류길재 통일부 장관을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추켜세우고 있다.

그동안 좌파 언론들이 지목한 소위 ‘합리적 보수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기회주의자’ 내지는 ‘범좌파’ 인사로 분류되는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 부친은 고 류형진 전 대한교육연합회장이다. 류형진 전 회장은 5.16 이후 3공화국 수립까지 최고 권력기관이었던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박정희) 고문을 맡았다. 국민행동본부(본부장 서정갑)는 그의 내정을 철회하라고 밝혔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주한민군 단계적 감축과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 한민군사동맹의 전향적 수정 고려 등을 주장했으며 북한 정권에 대해 주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조차 반대한 인물이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 주요 발언 


▲<국방백서> 북한 ‘주적’(主敵) 표현 반대 입장 표명

“北자극하고 남남갈등 등 만들 필요 없어”


▲금강산 관광 문제

1.“금강산 관광 사업은 대북화해협력 정책의 최초 결실이자 산파”

2. 박왕자氏 사살 이후에도 “하루속히 금강산 사업 재개해야”


▲김대중의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1. “대북정책 분야에서 남북긴장 더는데 기여”

2. “포용정책 남북관계에서 볼 때 불가피해”


▲현대사 인식

1. “北공산주의자들의 헤게모니는 자연스러운 것”

2. “강정구 교수 사법처리 바람직하지 않아”


▲김대중-김정일 회담(제1차 남북정상회담)과 관련된 입장

1. “남북정상회담, 남북 화해의 시대로 진입하는 전환점”

2. “김정일 위원장 서울방문, 민족문제 푸는 실마리”


▲북한 核 문제

1. “北핵연료봉 재처리 계속해온 것 같지 않아”

2. 북한 핵실험 해도 “전략기조 바뀌지 않을 것”


▲戰時작전통제권 관련 발언

“노무현 대통령, 北위협 감소를 예로 들며 전작권 환수 당위성 강조”


▲김정일에 대한 평가

“노동자-농민 자식들도 능력만 있다면 김정일 하에서 더 잘나갈 수 있어”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3.11일 임명장을 받으며, "북 안보적 도발 결코 용인할 수 없어" 라고 함. 진보적인 성향이 강한 분 같아서 걱정했는데, 그나마 다행인 듯. 보수 정부의 통일부 장관으로써 보수적으로 장관직을 수행했으면 좋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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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 프로필


이름 : 현오석

현직 : 한국개발연구원 원장(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

전직 : 한국과학기술원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생년월일 : 1950년 05월 05일


출생지 : 충북 청주

종교 : 천주교

혈액형 : O형

좋아하는운동 : 테니스


현오석 경제부총리 내정자 학력

1969년 경기고졸

1974년 서울대 상과대학졸

1976년 서울대 행정대학원졸

1984년 경제학박사(미국 펜실베이니아대)


현오석 경제부총리 내정자 경력

1973년 행정고시 합격(14회)

1974년 한국은행 조사1부 근무

1974년 한국은행 총무처 근무

1976∼1985년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 근무

198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원

1984∼1986년 이화여대 강사

1985년 부총리 비서관

1986년 경제기획원 인력개발계획과장

1987년 경제기획원 대외조정실 조정4담당관

1989년 세계은행(IBRD) Economist

1991년 경제기획원 동향분석과장

1993년 대통령 경제비서관

1996년 재정경제원 예산실 예산심의관

1997년 중앙공무원교육원 파견

1998년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1999년 재정경제부 국고국장

1999년 국민경제자문회의사무처 기획조정실장

2000년 세무대학 학장

2000년 ASEM사업추진본부 본부장

2001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특별보좌관

2001년 연세대ㆍ성균관대 강사

2002∼2007년 한국무역협회 무역연구소장

2002년 국제신문 경제칼럼니스트

2003년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

2003년 고려대ㆍ연세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

2003∼2006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겸 노사관계발전추진위원

2003∼2006년 우리금융지주 사외이사

2004년 서울신문 경제칼럼니스트

2004년 제주국제자유도시 추진위원회위원

2004년 FTA민간자문회의 위원

2005∼2006년 국무총리실 정책평가위원

2005년 국제개발협력위원회 위원

2005년 경제자유구역위원회 위원

2006년 증권예탁결제원 사외이사

2007∼2008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

2007년 관세청 FTA추진위원회 위원장

2007년 서울시 FTA추진위원회 위원

2007년 KBS 객원해설위원

2007년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

2008∼2009년 공공기관경영평가단 단장

2008년 세계일보 경제칼럼니스트

2008∼2009년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2009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현)

2010년 G20정상회의준비위원회 민간위원

2012년 세계은행 지식자문위원회(KAC) 초대 자문위원(현)

2013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현)



현오석 경제부총리 저서

'경제학'(1974) '국민소득 2만달러시대(共)'(2003) '대외경제정책방향 및 FTA추진전략(共)'(2003) '새로운 성장동력과 균형발전(共)'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63)는 1999년 옛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 전신)에서 경제정책국장과 국고국장을 끝으로 이코노미스트로 변신했고 2009년부터 정부 싱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을 이끌고 있다.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박근혜 정부의 초대 경제사령탑으로 14년 만에 ‘금의환향’하게 된다.


관료 생활 초기에는 주로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에서 일했다. 경제기획국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짜고 거시경제의 키를 쥐고 있던 핵심 부서다. 그와 함께 일했던 한 관료는 “합리적이고 온화한 스타일”이라며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 계획을 입안했던 실무자가 딸(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사령탑으로 일하게 된 것은 묘한 인연”이라고 말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내정자 주요 발언 


-경제민주화 관련

"경제민주화보다 경제선진화가 우선순위다"

경제민주화는 공정한 경쟁차원에서 접근해야 옳다. 정서적인 접근은 곤란하다.” 

“경제민주화보다 사회와 기업의 경제선진화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경제민주화의 기본정신은 공정한 경쟁“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의가 의도한 바와 달리 반 기업 정서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보호위주보다는 자생력을 기르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지 않으면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경쟁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즉 보호위주의 정책은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떨어뜨려 장기적으로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설명임

“경쟁력에 입각해서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어떻게 공정한 경쟁을 하느냐가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복지관련

“저부담, 저복지가 있고 고부담, 고복지가 있는데 나라 경제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조사 결과 저부담 고복지를 원하는데 그건 불가능하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오랫동안 공직을 떠나 있었지만 KDI 원장을 지내면서 정책 현안을 두루 꿰뚫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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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허태열 비서실장 프로필 



현직 : 허태열 대통령비서실 실장 (장관급)

전직 : 국회 제16,17,18대 국회의원


생년월일 : 1945년 07월 25일


출생지 : 경남 고성

종교 : 기독교

취미 : 바둑

기억에남는책 : 죄와 벌

선호하는음식 : 된장찌개


학력

1964년 부산고졸

1971년 성균관대 법학과졸

1980년 미국 위스콘신대 대학원졸

1988년 국방대학원졸

1999년 행정학박사(건국대)


경력사항

1970년 행정고시 합격(8회)

1971∼1974년 서울시 내무국 사무관

1974∼1985년 대통령비서실 과장

1985년 의정부시장

1987년 경기도 기획관리실장

1989년 부천시장

1991년 내무부 지방자치기획단장

1992년 내무부 지방기획국장

1993년 내무부 지방행정국장

1994년 내무부 민방위본부장

1994∼1995년 충북도지사

1996ㆍ1997년 신한국당ㆍ한나라당 부천원미甲지구당 위원장

1997년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1998년 한나라당 부산北ㆍ강서乙지구당 위원장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부산北ㆍ강서乙, 한나라당)

2000년 한나라당 지방자치위원장

2002년 한나라당 기획위원장

2003년 한나라당 대표특보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부산北ㆍ강서乙, 한나라당)

2004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선관위 부위원장

2005년 국회 지방행정체제개편특위 위원장

2006년 한나라당 사무총장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부산北ㆍ강서乙, 한나라당ㆍ새누리당)

2008∼2010년 한나라당 최고위원

2009년 국회 지방행정체제개편특위 위원장

2010년 국회 정무위원장

2013년 대통령 비서실장(장관급)




2. 허태열 비서실장  발언 정리 


2008년 한나라당 최고의원 허태열은 2008년 7월 16일 한나라당 지도부 회의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영유권 주장의 예와 B형간염유전자의 유사성을 예로 들며 쓰시마 섬의 여유권을 주장해야 한다고 하였다.


2009년도 한나라당 부산시당 국정보고대회에서 "좌파는 빨갱이"라며 "빨갱이들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동안의 달콤한 추억을 잊지 못한다"고 하였으며, 좌파가 이명박 대통령을 흔들고 있는데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 게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2010년 9월 28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여야 37명 의원들은 대마도 포럼을 창립하였다. 허태열 한나라당 의원은 이날 포럼 창립식에서 "대마도는 역사적, 문화적, 인종적으로 우리 영토임이 분명하다"며 "대마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초대 제헌국회에서의 영유권 주장과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서의 반환 요구 이후로 사실상 전무한 상태로 현재까지 이르러왔다"고 지적하였다.


3. 허태열 비서실장 평가 


오랜 행정 경험과 해박한 관련 지식이 강점인 허태열 비성실장은 합리적인 성품과 정치적 경륜, 대통령의 의중을 꿰뚫는 역량 등 종합적으로 대통령 비서실장에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정치 행정에 걸친 그의 경륜과 관록은 청와대 경호실장과 안보실장을 두루 아우르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평이다. 그는 16대 총선(2000년도)에서 2년 뒤 대통령에 당선되는 노무현을 물리치고 부산 북구 강서구 을에서 당선되기도 했다.



청와대 비서실장에 허태열 의원 내정

서울경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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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남수 교육부 장관 프로필 



현직 : 위덕대학교 총장

전직 : 교육인적자원부 차관

생년월일 : 1952년 3월 22일

출생지 : 서울

종교 : 불교

신장 : 178cm

취미 : 바둑

좋아하는 운동 : 등산


서남수 교육부장관 학력

1971년 서울고졸

1975년 서울대 철학과졸

1985년 미국 일리노이대 대학원 교육학과졸

1986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과졸

1996년 교육학박사(동국대)


서남수 교육부장관 경력사항

1978년 행정고시 합격(22회)

1979년 문교부 행정사무관

1985년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1989년 문교부 서기관

1990년 서울대 연구진흥과장

1991년 교육부 과학교육과장

1992년 교육부 대학학무과장

1994년 영국 런던대 교육학대학원 객원연구원

1997년 교육부 교육정책총괄과장

1998년 교육부 대학교육정책관

1998년 교육부 교육정책기획관(부이사관)

1999년 경기도교육청 부교육감(이사관)

2001년 교육인적자원부 대학지원국장

2002년 서울대 사무국장

2004년 해외 연수

2004년 교육인적자원부 차관보

2005년 서울시교육청 부교육감

2007∼2008년 교육인적자원부 차관

2008∼2010년 경인교대 교육대학원 석좌교수

2008년 서울장학재단 이사(현)

2010년 홍익대 초빙교수(현)

2012년 위덕대 총장(현)

2013년 교육부 장관 내정자


서남수 교육부장관 근정포장

서남수, 전두환 정권에서 '이념교육' 업무로 근정포장

- 국민정신교육의 내실화를 위한 기획 및 조정 업무 수행 공로 인정



무엇보다 노무현 정부 때 교육인적자원부 차관을 지낸 것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전교조에서 환영한다고 하는 건 더 인상적이다.

또한 서남수 교육부장관은 현직 위덕대 총장인데, 위덕대가 정부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분류된 곳이다. 

이해찬이 교육부 장관으로 우리나라 교육계 망쳐 놓았을 때 같이 활동했다는 논란도 있다.



뭐 지켜보면 될 것 같다. 뻘짓하면 자를 수 있으니, 장관은 그게 좋다. 국회의원은 4년동안 참고 기다려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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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근황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 후 SNS를 통해 근황을 전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7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말 오랜만에 옛집에 돌아왓습니다."고 글을 연 뒤 "어제부터 서재정리를 시작했습니다. 이삿짐 상자에서 꺼낸 책을 한권한권 펼추며 책장에 꽂다보니 책속에 담긴 추억이 새삼스럽네요"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어 "그렇게 한나절을 후딱 보내고, 아내와 함께 자장면과 탕수육으로 시장기를 달랬습니다. 후루룩 한젓가락 입안가득 넣어 먹다보니 이게 사람사는 맛이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 함께 쳐다보며 웃습니다."


지난 24일 퇴임한 이 전 대통령은 이 날 오후 논현동 사저로 돌아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환대하는 주민들에게 "강남구 논현동 주민으로 돌아와 기쁘고 환대해줘서 고맙다"며 "지난 5년간 어렵고 힘들었지만 행복한 일꾼이었고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한편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받는 연금은 1억 3500만원, 월 1125만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었다.


이건 오늘 페이스 북에 올라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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