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 시각장애 증후군 


희귀한 시각장애는 대략 4가지 정도가 있다고 한다. 뇌손상 시각장애 환자들이 보고 느끼는 세상이란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비현실적인 세상이다. 


1. 색깔(color) 인식장애

이런 환자의 세상은 100% 흑/백의 세계이다. 뇌손상에 의한 색맹임에도, 이들에게는 색깔의 '기억'조차도 뇌에 존재하지 않는다. 색스박사의 환자중에는 교통사고로 뇌진탕을 일으킨 후, 색깔을 잃어버린 화가가 있다. 이 환자는 화가였기 때문에, 빨강색, 노란색, 파란색이 '무엇'인지는 알고있었지만, 도저히 그 색깔을 머리로 떠올리수는 없었다고 한다. 마치 누군가가 이 환자의 머리에서 색깔 자체를 송두리체 지워버린 듯, 아무리 "붉은 사과"를 상상하려해도, "검은 사과" 밖에 떠올릴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 이런 색깔 인식장애를 가진 환자분들이 많다. 붉은색과 푸른색, 녹색을 구분하지 못하고, 모조리 "회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니, 선군정치 만세! 미국놈들 몰아내자! 어쩌구 이런 붉은색의 주장마저도 회색이라고 우겨대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이미 붉은색의 기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붉은색을 붉은색으로 인지하는 분들은 그나마 색맹은 아니지만, 붉은색을 검은색, 회색이라고 우기는 분들은 심각한 뇌손상이 아닌지 당장 전문의에게 진찰을 받아야 한다. 빨갱이 위수동지 족속들을 "진보"로 착각하는 분들도 색맹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돌아가신 김대중, 노무현과 같이 모든 세상을 흑과 백으로 인지하는 분들이 특히 이런 증세를 의심해 봐야 할것이다.




2. 형상(shape) 인식장애

이런 환자는 동그라미와 사각형, 얼굴과 모자와 같은 기본적인 형상 마저도 인식하지 못한다. 위에서 언급한 "안면인식장애" 증후군도 이에 속할수 있다. 증세가 심한 경우에는 와이프와 모자도 구분을 못한다. 즉 사람의 얼굴이란 그저 위가 검과 밑이 허연 물체일 따름이고, 따라서 비슷한 크기의 검은 물체(모자)를 사람의 머리로 오인한다는 것이다.


☞ 우리 조상님들도 예전부터 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졌기에..."똥인지 된장인지 모르는 놈들"이라고 하지 않았나. 똥인지 된장인지를 두눈으로 구별못하고, 꼭 맛을 봐야 아는 분들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핵과 미사일을 그저 고철덩어리로 착각하는 분들, 화염병을 불꽃놀이로 착각하는 분들, 조중동을 괴물로 생각하는 분들이 특히 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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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영호남 지역감정을 왜 부추겼나?


81년도와 85년도에 있었던 총선에서 민정당은 호남의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다. 다시 말하면 그 당시까지만 해도 영호남 지역감정이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았었다. 아래는 81년도와 85년도 총선에서의 정당별 득표현황이다.





※ 민정당(민주정의당) :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세력이 중심이 되어 구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을 규제한 가운데 1981년 1월 15일 창당, 1981년 3월 전두환이 제 12대 대통령에 취임하고, 곧이어 제 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제 5공화국의 집권여당이 됨. 1985년 제 12대 국회의원선거에서도 신민당 돌풍에도 불구하고 과반수 의석을 확보



정치적인 입장에서 영호남의 구도가 생긴 것은 김영삼, 김대중의 단일화 실패에 기인하는 일이다. 그 때부터 선거 때 영호남의 투표성향이 완전리 달라졌다. 그 해 통일민주당을 장악한 김영삼은 대통령 선거 출마를 발표하고 나서자 당내 경선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여있던 김대중은 10월 18일 통일민주당을 탈당하여, 평화민주당을 창당한다.



김대중과 대선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김영삼은 제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2위로 28%의 득표율을 얻어 민주정의당의 노태우에게 패배하였다. 1987년 당시 노태우, 김영삼 대선 후보는 각각 광주 유세에 나섰다가 성난 시민들이 던지는 돌과 화염병에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김대중은 지속적으로 지역감정을 자극하며 영호남의 정치적 대립구도를 만들었다. 덕분에 깃발만 꼽으면 덩선이 되는 철밥통이 만들어 졌다. 그것을 새누리당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다. 물론 김영삼이나 김종필도 그 지역구도에 편승했다. 그러나 원죄는 김대중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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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독재의 그늘아래서 치부를하여 부를 축적한자들이 새누리당에 있다?

박정희 집권 시의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80불이었다. 당시 태국은 160불이었다. 말 그대로 거지나라렸다. 지금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22,000불 수준에 올라 있다. 사실 그게 박정희의 경제개발 덕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만일 새누리당에 박정희 독재 하에 치부를 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모두 모여있다면, 새누리당의 당원은 5천만명 쯤 돼야함. 대한민국 국민 중, 박정희 시대에 부를 축적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새누리당은 5.16 광주폭동을 도발시켜서 무고한 시민을 죽인자들의 본거지이자 근간이다?

80년 5월 16일 전국의 학생운동 조직은 그간의 시위를 멈추고 일단 관망의 자세에서 정국을 지켜볼 것을 결의하였다. 그로 인해 시위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유독 전남지역에서만 대규모의 민주화 성회를 계획했다.


그 결정은 당시 전남지역의 용공세력의 사령부였던 녹두서점과 현대문화연구소의 역할에 의해서였다. 광주에 군병력이 투입된 것은 그 때문이다.. 5월 18일 게엄령이 선포되자 전남대 앞에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경상도 정권이 전라도의 씨를 말리려 한다”는 선동을 좌파학생운동권이 광주에 퍼뜨리면서 5.18의 비극은 시작이 되었다.



물론 전두환 정권이 잘 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5.18을 도발시킨 것이 과연 전두환 정권일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간다. 역사는 흔히 대립되는 한 쪽을 미화시키고 다른 한 쪽을 매장시키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올바른 역사관이 아니다. 5.18의 책임을 따진다면 전두환 정권보다는 광주의 시위를 주도했던 좌파들의 잘못이 더 크다.


물론 선동에 넘어가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광주시민들에게는 조의를 표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철밥통을 공고히 하고 노벨상에 대통령까지 해 먹은 김대중을 보면 좀 착찹하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역사상 5.18 비극의 가장 큰 수혜자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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