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택"영호남시대 지나갔다…단임제는 바꿔야"

"정당 보조금이 세금이란 걸 국민들이 알면 저항할 것"



1.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 관련, 선거구 변화를 예상한다면? 

구체적 선거구 획정방법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기에 결론지을 수는 없으나 선거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를 통해 정치혁신이 이뤄지는 계기가 될 것.





2. 충청권의 향후 정치적 위상이 강화되지 않겠는가?

 충청권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커지겠지만, 그것은 이제까지 충청도민들이 제 몫을 찾지 못했던 것을 정상화시키는 것임.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할 수 있음.





3. JP 이후 충청권에 정치적 구심점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선?

충청권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고, 중앙에서 성장할 토대가 마련된 만큼 정치적 구심력을 형성할 수 있는 인물이 성장가능해졌음.


4. 해수부 장관, 충북지사, 최고위원 등을 지냈고 대선주자로도 꼽히고 있는데?

39세로 정치 처음 시작시에 한국의 존F케네디가 되겠다는 큰 꿈을 품고 나왔는데, 그 꿈을 아직도 가지고 있으며‘꿈이 있는자는 멈추지 않는다’는 말을 좌우명으로 가지고 있음.



5. 당내 정치혁신 논의와 관련해 중요한 것을 꼽는다면?

지엽적이고 표피적인 것들이 아니라, 국민들이 공감하는 아이템을 먼저 선정해야 할 것. 예컨대 정당보조금을 국민 세금이 아닌 당비나 후원금, 기부금으로 하는 등의 새로운 정치 프레임으로 국민들이 정치가 혁신됐다고 느낄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함.


6. 후보공천과 관련해 개선방안을 제시한다면?

공천문제가 정치를 바꾸는 중요한 요소임. 상향식 공천제가 완벽한 제도는 아니지만 당권을 가진 사람이 공천권을 휘두르는 것보다는 나음. 미국식 오픈 프라이머리의 경우 우리 정치상황과는 좀 다르기 때문에 적용에는 신중해야 함.


7. 새누리당이 재집권하기 위해 시급한 것은?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제공해야 함. 경제살리기와 정치개혁이 현재 국민들이 가장 원하는 것임. 경제살리기와 정치개혁을 통해 국민들이 안심, 안정, 평안을 느낄 수 있는 3안 시대를 만드는 것이 국민들께 선택 받을 수 있는 길임.


8. 친박, 비박 갈등에 대한 의견은?

정치인에게 개인적인 친소관계는 있을 수 있으나 친이, 친박, 비박 등은 뚜렷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식적인 용어에 불과. 당의 다양한 목소리는 더 좋은 정책을 위한 선의의 경쟁임.


9. 지역구의원 증원이나 비례대표 감축에 대한 의견은?

선거구 재획정이 필요하지만 지역구 의원 증원은 국민정서상 받아들이기 힘들 것임. 비례대표제 역시 단순히 숫자를 조정하기보다 선정 과정을 들여다보고 공정성과 투명성을 제고하는 것이 중요.





10. 개헌론에 대한 입장은?

개헌이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언제 공론화시킬지가 중요하다고 봄. 우선 국민들은 지금 개헌 필요성에 대해 절박감을 느끼지 않고 있음. 대통령도 선두에 서지 않고 있고, 의원들간에도 의견수렴이 되어 있지 않은 상황. 


5년 단임제의 병폐 등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에 변화는 필요하나, 시기 등이 적절하지 않다고 봄.


11.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되고 있는데 대해선?

몇 개월 앞도 예측하기 힘든 정치 상황에서 3년 후 대선을 전망하는 것은 무의미. 국제사회 전체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유엔 사무총장을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국내정치문제에 연계시키는 것은 부적절함.






기사원문 : http://news1.kr/articles/?1944828

Posted by 착한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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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영호남 지역감정을 왜 부추겼나?


81년도와 85년도에 있었던 총선에서 민정당은 호남의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다. 다시 말하면 그 당시까지만 해도 영호남 지역감정이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았었다. 아래는 81년도와 85년도 총선에서의 정당별 득표현황이다.





※ 민정당(민주정의당) :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세력이 중심이 되어 구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을 규제한 가운데 1981년 1월 15일 창당, 1981년 3월 전두환이 제 12대 대통령에 취임하고, 곧이어 제 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제 5공화국의 집권여당이 됨. 1985년 제 12대 국회의원선거에서도 신민당 돌풍에도 불구하고 과반수 의석을 확보



정치적인 입장에서 영호남의 구도가 생긴 것은 김영삼, 김대중의 단일화 실패에 기인하는 일이다. 그 때부터 선거 때 영호남의 투표성향이 완전리 달라졌다. 그 해 통일민주당을 장악한 김영삼은 대통령 선거 출마를 발표하고 나서자 당내 경선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여있던 김대중은 10월 18일 통일민주당을 탈당하여, 평화민주당을 창당한다.



김대중과 대선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김영삼은 제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2위로 28%의 득표율을 얻어 민주정의당의 노태우에게 패배하였다. 1987년 당시 노태우, 김영삼 대선 후보는 각각 광주 유세에 나섰다가 성난 시민들이 던지는 돌과 화염병에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김대중은 지속적으로 지역감정을 자극하며 영호남의 정치적 대립구도를 만들었다. 덕분에 깃발만 꼽으면 덩선이 되는 철밥통이 만들어 졌다. 그것을 새누리당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다. 물론 김영삼이나 김종필도 그 지역구도에 편승했다. 그러나 원죄는 김대중에 있다는 것이다.



Posted by 착한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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